그리스도인들이 이사를 하게되면 새로이 교회를 찾아 그 교회의 한 식구가 됩니다. 이렇게 교회를 선택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목회자의 설교'에 무게를 둔다고 리서치에서 밝혀 졌습니다. 물론 거기에 이어 자녀들을 위한 교회학교를 살펴보지요.
이제 목회자의 편에서서 이 내용을 살펴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한 식구들이 중요시하는 것이 목회자의 설교이다보니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설교'에 투신하게 됩니다. 결코 나쁜 것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교준비'와 유사하거나 혹은 더 중요한 일들이 인생사에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럼에도 다른 귀한 일들을 제쳐두고 '설교준비'에만 집중하다보면 목회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자 애쓰고 또 거기에다가 명설교자로서 인기와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길을 걷도록 유도되기 쉽습니다.
고백자 막시무스(St. Maximos the Confessor, 580-662)는 "신학, 하나님의 경륜, 덕과 악덕에 관한 본문"(필로칼리아 2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로만 영적 지식을 흉내 내는 사람은 자기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듣는 사람들의 정신을 도둑질합니다.
마찬가지로 표면적인 행동으로 덕을 흉내 내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진작하기 위해서 보는 사람의 시각을 도둑질합니다.
두 종류의 사람 모두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전자는 듣는 사람의 정신을 왜곡시키고,
후자는 보는 사람들의 육체적인 감각을 왜곡시킵니다.
어떤 명설교를 한다 하더라도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과 동행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이만이 주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할 것입니다. 말은 좀 부족할 수 있고, 내용도 갖가지 예화와 내용으로 윤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이의 마음 속에서는 주님의 말씀이 나오고 주님을 따르는 행동들이 나옵니다. 예배 시간에 들려지는 설교의 말씀만이 아니라 일상 하는 말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요, 설교가 되고, 자연스레 하는 행동이 곧 예수님의 모습이요, 설교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설교준비'보다 더 앞서서 이뤄져야 할 것은 '주님과의 동행'이며 주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것이 아닐까요?